글
[번역] 現代英語学へのアプローチ (현대 영어학에 대한 어프로치) -3-
제 2장 - 영어의 탄생
언어의 역사는 그 언어를 말해온 민족의 역사를 나타낸다. 영어의 약 1500년간의 역사는 브리튼 섬에 전개되어온 민족끼리의 싸움과 사회적 발전이 일으킨 변화와 성숙의 역사다. 영어의 역사를 예로 들자면, 어째서 영어는 어휘가 유택한가, 철자와 발음의 일치하지 않는가. 부규칙동사가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게된다.
영어의 역사는 3개로 구분된다. 시대구분에 있어서는, 학설에의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본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눈다.
고영어 (Old English, OE) 700-1150
중영어 (Middle English, ME) 1150-1500
근대영어 (Modern English, ModE) 1500-
초기근대영어 (Early Modern English, EModE) 1500-1700
후기근대영어 (Late Modern English, LModE) 1700-1900
현대영어 (Present-day English, PE) 1900-Present
고영어를 앵글로섹슨인이 브리튼 섬에 투입한 450년경을 시초로 보는 시점이 많지만, 본서에서는 영어의 문헌이 출현한 700년경을 시작으로 12세기 전반에 잉글랜드가 노르만인에게 정복되어, 지배자층의 언어가 프랑스어가 될때까지의 기간으로 한다. 고영어는 지배자층의 언어가 프랑스어가 되었던 것으로부터 영어가 역사의 표면으로부터 모습을 감추어, 약 300년후에 부활했을때에는 크게 모습을 바꾼 시기로서, 그 끝은 15세기 후반의 인쇄술의 발명과 대모음추이로 한다. 근대영어는 그 전반은 셰익스피어의 활약이나 철정역성서(수정필요) 의 출판에 의한 오늘날의 영어를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로서, 초기근대영어로서 보여지며, 후반의 초기근대영어와 구별하거나, 더불어 20세기 이후의 영어를 근대영어로 부르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1. 인도, 유럽의 어족
역사적으로 보아서, 브리튼 섬에는 끊임없이 대륙으로부터 민족이나 언어가 유입되어 왔기때문에, 먼저 영어의 위치를 알기위해서 인도, 유럽의 어족 속에서 영어에 관계된 계통을 살펴보자.
현재의 인도와 유럽의 많은 언어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공통의 선조의 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형제를 나타내는 언어를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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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친족이나 수사등의 기본어 중에 규칙적인 음에 대응시키는 것으로, 인도, 유럽어족이라고하는 언어의 가계도가 작성되었다. 그 선조에 해당하는 인도, 유럽의 조어(Proto Indo-European)를 말하고 있었던 민족은,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에 거주하며, 기원전 3500년 경부터 각지에 이주하여, 상호의 접촉이 적게됨으로 인하여, 다른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고 생각되어지고있다.
인도, 유럽어족 중에서, 영어는 게르만에 속하는 저지서 게르만어다. 한편 나중에 어휘의 면에서 영어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라틴어와 프랑스어다.
2. 영어의 시작
2.1 영어가 도래하기 이전의 브리튼 섬
브리튼 섬에는 선사시대부터 민족이 거주하였으며, 그 후로, 시기로 보자면 기원전 수백년부터 수천년의 자설이 있지만, 켈트인 (Celts)이 대륙으로부터 섬으로 건너 정착했다. 기원전 55-54년에는 줄리어스 카이사르가 브리튼 섬에 침략하여, 섬 남동부를 로마제국의 영토에 포함시키는 것이 되엇다. 약 1세기 후, 기원 43년에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에 의하여 섬은 정복되어, 켈트인 (브리튼인)은 로마제국이 약체화할대까지 약 400년간, 로마에 지배당했다. 2세기에는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하여, 북방의 스코틀랜드 (갈레도니아라고 불렀다) 와 경계에 북방민족 (켈트족) 의 침입을 막는 하도리아누스의 장성이 건설되었다. 브리타니아는 로마인들에 의한 브리튼 섬의 제국령 명칭이다.
2.2 영어의 도래
대륙에서 켈트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자, 로마군은 브리튼 섬으로부터 철수했다. 410년에 최후의 로마병이 떠난 후, 현재의 덴마크와 독일 북부 해안지역으로부터 앵글인, 섹슨인, 유대인의 3개이ㅡ 민족이 브리튼 섬에 침입해왔다. 역사가 비드의 손에 의하여 731년 출판된 영국민교회사에는 북방민족의 공격에 고통받는 브리튼인의 왕에 초청되어 449년부터 켈트만 민족이 도래하여, 그 뒤, 브리튼 섬을 침략하여, 정착한 것이 기록되어잇다. 침입한 켈트만 민족의 언어는 서 켈트만어였다. 그들을 통합하여 앵글로 섹슨인으로 불렸고, 그들의 언어가 영어의 시초가된다. 잉글랜드라고 하는 호칭은 잉글라랜드 (앵글로 인의 토지)에서 유래된다. 앵글로 섹슨인은 애초에 이교도였지만, 597년 성 아우그스티누스가 포교에 박사를 가하여, 급속도로 기독교로 개종하게되었다.
고영어의 방언은 침입자의 영어를 반영하여, 앵글로 인이 많은 북방의 노던브리아방언과 템스강과 헨버 강에 정착한 인글랭드 중앙부의 마시아방언, 유대인이 정착한 잉글랜드 남동의 켈트방언, 섹슨인이 정착한 템즈 강의 남쪽 지역의 서섹슨 방언으로 나뉜다.
더불어 8세기 후반부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현재의 덴마크로부터 바이킹으로 부리는 해적이 침략해왔다. 그들은 Danes로 불리었으며, 그 언어는 북 켈트만 어의 고 노드어이다. 바이킹의 잉글랜드 정복은 남서부 베세스의 알프레드 대왕에 의해 저지당했지만, 왕과 맺은 조약에 의하여, 덴로 지역으로 불린 잉글랜드 북동부의 광대한 지역에 정착했다. 덴로 지역에는 현재도 많은 북구기원의 지명이 남아있다.
덴인을 덴로지역에 정착시킨 알프레드 대왕은 군사면의 강화뿐만이 아니라, 학간의 흥행에도 박차를 가하여, 중요한 라틴어의 문헌을 영어의 산문으로 번역시켰다. 또한 왕의 지도하에 '앵글로 섹슨 연대기'가 890년경부터 기록되어 그 중에서도 '피터바라 연대기'는 1154년까지 이어져왔다. 고영어의 문헌은 바이킹의 공격에 의하여 태반이 파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있는건 서 섹슨 방언의 것이 많다.